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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31 인상주의 by 아리º

인상주의 : 19c 후반에서 20c 초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근대 예술운동의 한 갈래.

공상적인 표현기법을 포함한 모든 전통적인 회화기법을 거부하고 색채·색조·질감 자체에 관심을 둔다. 인상주의를 추구한 화가들을 인상파라고 하는데, 이들은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변화 속에서 자연을 묘사하고, 색채나 색조의 순간적 효과를 이용하여 눈에 보이는 세계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하려 하였다.

인상주의의 화가(모네·마네·피사로·르누아르·드가·세잔·고갱·고흐 등)

◈ 클로드 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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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 디에프 부근의 절벽

-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인상·일출(日出)》이라는 그의 작품에서 인상파란 이름이 생겼다. 햇빛을 받은 자연의 표정을 따라 밝은 색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팔레트 위에서 물감을 섞지 않는 인상파기법의 한 전형을 개척하였다. 대표작으로 《인상 ·일출(日出)》《루앙대성당》《수련》 이 있다.

- 그와 관련된 책으로 클로드 모네 Monet (크리스토프 하인리히 작)과 모네 (ART CLASSIC 5) Monet (바네사가비올리 작)이 있다.

- 2007년 6월 6일부터 9월 26일까지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어 국내 최초로 수련 연작을 전시하기도 했다. 수련 연작, 가족의 초상, 지베르니의 정원, 센느강과 바다, 유럽의 빛으로 테마를 잡아 전시했다.

- 마네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파리 만국 박람회장에서 우연히 보게 된 포장지 우키요에를 보고 영향을 받아 그림을 수집하고 모사하기도 했다.

◈드가
 

본명 일레르 제르맹 에드가르 드가(Hilaire Germain Edgar De Gas). 파리 출생. 부유한 은행가 집안의 장남으로, 처음에는 가업을 계승하기 위하여 법률을 배웠으나, 화가를 지망하여 1855년 미술학교에 들어갔다. 거기서 J.A.D.앵그르의 제자 L.라모트에게 사사()했고, 앵그르로부터도 직접 가르침을 받아, 평생토록 이 고전파의 거장에 대한 경의를 품게 되었다. 1856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르네상스 작품에 심취하였다. 이 무렵부터 거의 10년간은 화가로서의 본격적인 수업기로 오로지 고전연구에 힘을 기울였다. 1865년 살롱에 《오를레앙시()의 불행》을 출품하였다. 그 후 자연주의 문학이나 E.마네의 작품에 이끌려, 근대생활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을 제작했는데, 1874년부터 1886년까지 인상파전에 7회나 출품 ·협력하였으나 그 후로는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그는 파리의 근대적인 생활에서 주제를 찾게 되자 더욱 재능을 발휘하여 정확한 소묘능력 위에 신선하고 화려한 색채감이 넘치는 근대적 감각을 표현하였다. 인물동작을 잡아 순간적인 포즈를 교묘하게 묘사하여 새로운 각도에서 부분적으로 부각시키는 수법을 강조해왔다. 경마나 무희, 욕탕에 들어가거나 나오려는 여성의 한 순간의 동작을 즐겨 그렸다. 이러한 그의 눈과 기량은 파스텔이나 판화에도 많은 수작을 남겼을 뿐 아니라, 만년에 시력이 극도로 떨어진 뒤에 손댄 조각에까지 더없는 걸작을 만들어냈다. 선천적으로 자의식()이 강한 성격 때문에 독신으로 보냈고, 그의 인간혐오증은 늙어갈수록 더하여 고독한 가운데 파리에서 83년의 생애를 마쳤다. 파리 인상파미술관에 소장된 대표작 《압생트》(1876) 《대야》(1886)를 비롯한 많은 작품를 남겼다.


◈ 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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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열 네송이의 해바라기

 (신 인상주의)

- 네덜란드의 화가. 인상파와 일본 우키요에의 영향으로 강렬한 색채와 격렬한 필치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작풍을 확립하였다.

- 작품에 《빈센트의 방》《별이 빛나는 밤》《밤의 카페》등이 있다.

- 권총자살을 하였다. 그의 유작은 매우 많다. 지금은 온 세계가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의 정열적인 작풍이 생전에는 끝내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가 위대한 화가라는 인상을 처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준 것은 1903년의 유작전 이후였다.

- 그의 일대기와 그에 관련해 저술된 책은 반 고흐

(ART CLASSIC 2) Van Gogh (페데리카아르미랄리오 외 작)과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작)이 있다.

- 국내에서 2007년 11월 24일부터 2008년 3월 16일까지 전시회를 열었으며 국내 초유의 회고전으로 기록된다. 반 고흐의 삶과 작품을 총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전시였다. 네덜란듣 시기와 아를르시기 셍레미 시기, 오베르 쉬르 우아즈 시기로 나누어진다.

- 또 고흐에게 영향을 준건 고흐보다 반세기정도 앞선 밀레였다고 한다. 반 고흐는 밀레를 ‘정신적 아버지’로 간주할 만큼 단순히 예술적으로 영향 받은 것을 넘어, 정신적으로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밀레의 작품 세계에서 보여지는 형태적 요소의 엄격함 때문이었다. 동시에 자신의 생각과 밀레의 이념이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즉 밀레와 마찬가지로 반 고흐는 자연에 뿌리 박은 농민들의 정서와 일체감을 느꼈으며, 이들의 삶 속에서 양식을 구하는 인간에 대한 성서적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또 밀레와 마찬가지로 영속적인 것과 겸허함이라든가 동정심을 농촌에서 찾고자 했다. 즉 그는 밀레의 농촌 풍경 그림들이 자신이 표현하고자 했던 하나님 혹은 ‘저 높은 곳에 있는 그 무엇’의 존재성을 일깨워 주고, ‘진지한 인간적인 감정’을 전달한다고 생각했다. 반 고흐에게 있어서 밀레는 단순히 예술적인 안내자일뿐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모범이 되는 것이다.

- 그 외에는 에밀졸라의 책을 읽으며 영향을 크게 받은듯하며 그는 성서와 함께 에밀졸라의 책을 함께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 여류화가 메리 케세트(Mary Stevenson Cassatt (May 22, 1844 – June 1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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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e theater

- 인상주의 화가이지만 그녀는 미국 펜실베니아 주 태생으로 펜실베니아 미대를 들어간 후 1866년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했으며 인상파의 대가 중 하나인 피사로를 만나게 된 뒤 인상주의에 눈을 떳으며 1872년 살롱에 작품을 냈다. 후에 드가를 만나 둘은 좋은 동반자가 되었으며 당당한 인상주의 여성 화가가 되어 베르조와 함께 여자가 그림 그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던 시대의 여류화가가 되었다.

- 엄마와 아이를 많이 그렸으며 미국 출신의 인상주의 화가로 유명해지긴 하지만, 그림보다는 인상파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상징성이 더 컸다.

Posted by 아리º